2025년을 맞이하며

최근에 디제잉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6년 전 베를린을 처음 방문 한 뒤부턴 거의 매주 주말 밤엔 음악을 듣기 위해 여러 클럽들을 다녔다. 그 나날 속에는 횡단보도 앞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고 싶은 욕망에 이글거리던 여름의 낮도 있었고 한 순간도 춤이 나오지 않고 좌, 우로 발만 옮기다 집에 가기도 했던 추운 겨울 밤도 있었다. 언젠가 때가 오겠지 하면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추던 순간들이 쌓여 어느날은 음악이 삶에서 차지하는 행복이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단지 새로운 영역에서의 도전이 아닐까? 감각의 해상도가 올라가겠지 하며 시작 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나 삶에서 큰 변화를 주고 있다.

취업을 하고 나서부터 일과 관련된 많은 것들에 꽤나 천착해왔다. 그 동기가 때로는 내가 종사하는 업에 대한 도메인 지식의 부족 때문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한 불안일 때도 있었다. 이러한 천착은 정말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강박적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많은 것들을 생산 논리로 치환하여 사고하기도 했다. 그러다 불연듯 찾아온 새로운 감각으로의 지평은, 삶을 보다 깊이 사유하게끔 하고 더 넓은 영역의 장으로 확장시켜주었다.

감각과 사고의 확장은 다차원적으로 진행된다. 시간의 선형과 물리적 공간에서 울리는 파형들이 만들어내는 입체감, 눈을 감고 머릿속에 그려나가는 추상적인 차원의 공간까지. 점을 이어 선을 만드는 것을 넘어 깊이를 만들고, 한 영역에서 장이 만들어지면 또 다른 장으로의 확장이 일어난다.

작금의 시기는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인 것 같다. 비단 이것이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의 논의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보이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질서에 참 많은 불편함과 답답함과 분노가 있었다. 돈으로만 치환될 수 밖에 없고 치환할 줄 밖에 모르는 세상이 참 못나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 얘기하는 것들에 대해 논쟁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점점 말을 아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최근 한 3년 정도는 진지하게 한국에 사는 것이 맞나에 대한 고민을 했다. 어딜 가든 이 헤게모니는 마찬가지로 존재할 것은 안다. 다만 문제의식이 존재하고 비판담론이 존재하며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곳인가에 대해 많이 살펴보게 된다.

문제가 눈에 띄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그 문제가 여러 층위에서의 오염이 일어난다. 과한 오염이 팽창하다보면 언젠가 그것이 터지기도 한다. 말같지도 않은 논리가 프로파간다가 되고 군부독재의 폭력성의 치하에 치유받지 못한 상처들 위에서 다시금 그 말마따나 망국적 행태를 자행해냈다. 사람들의 연대 속에서 피어난 시위의 현장에서 목도한 공동체적 질서의 가능성과 시간이 점차 흐를 수록 나타나는 반대되는 폭력성을 마주하며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한강 작가는 노벨 수상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나는 재편되어가는 현재의 질서가 과거와 죽은자들의 유산으로 다시금 아름다운 세계가 되었으면 한다. 그 희망에 때로는 기대하기도 또 좌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다.

우리는 재현 가능한 것들, 설명 가능한 것들, 확정적인 것들에 목매여 살아간다. 타성에 젖은 것을 넘어 이제는 그것이 자발적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이데올로기적 환상과 불일치하는 삶에서 복잡성과 다의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가지 못한 채로 적당한 안락함에 갇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 성급한 차원의 축소를 통해 가져온 결과들만이 삶에서의 동력이 된다.

이립(而立)의 나이에서 너무나 더 많이 흔들린다. 그럼에도 이런 불안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사고하고 경험하고 행동하며 더 넓은 차원에서의 확장과 더 많은 포용력을 기반으로한 사랑을 그리고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다층적인 방향으로의 지향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